모스키오토 2007. 8. 16. 17:55
빛 나뭇가지 사이로 붉은 새해가 밝았다. 임오년. 달리는 말의 힘찬 기운이 느껴지는 한 해다.

새해 첫 산행에는 색다른 설렘이 있다. 산정에서 한 해의 복을 기원하게 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일출 때라면 해를 보고, 산사에서라면 부처를 보고, 그것도 아니라면 산정에 있는 돌무더기 앞에서라도 한 해의 건강과 안녕을 기원하게 된다. 소망을 빌 첫 산행이라면 성스러운 산에서 시작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왠지 신통력 있는 산신이 새해 소망을 이루게 해줄 것 같다.

예부터 소망을 빌 때면 진산(鎭山)을 찾았다. 고을의 가장 신령스런 산. 마을의 길흉화복을 점지하는 주산(主山)이다. 올 첫 산행은 언양의 진산에서 맞는다. 울주군 언양읍과 상북면, 두서면을 경계짓는 고헌산은 영남알프스 북쪽 자락에 위치한 1천고지의 고산이다. 이 산의 옛이름이 고언산. 고언산 아래 양달진 곳이 곧 언양(彦陽)이다.

고헌산정은 언양 땅에서 하늘과 가장 가까운 곳이다. 그러나 단순히 키 때문에 진산이 된 것은 아니다. 고헌산에는 신령스러움이 배어 있다. 산 정상 바로 아래에는 사계절 내내 샘솟는다는 용샘이 있다. 가뭄 때마다 기우제를 지냈다는 곳이다. 고헌산은 새 생명이 시작되는 산이기도 하다. 남쪽에서는 구량천이 흘러 태화강의 지류를 이루고, 북쪽에서는 동창천이 발원해 밀양강으로 흘러든다.

새해 첫 산행코스는 ‘신기마을~삼진아파트~경고판~동래정씨묘~방화선 삼거리~고헌산(1,032.8�)~방화선~채소밭~채석장~상차리’로 이어진다. 산행시간은 4시간 가량. 산행 기점과 종점은 더 이상 한적할 수 없는 조용한 길. 한 해를 차분히 시작하기는 그만이다.

언양시외버스터미널에서 석남사행 버스를 타고 가다 신기마을에서 내린다. 마을 어귀에는 ‘신기마을’ 표지석과 ‘고헌사’ 표지판이 양쪽으로 서 있다. 진우훼밀리아 아파트를 바라보며 마을로 들어간다. 보성빌라가 마주 보이는 삼진아파트 옆에서 산길이 열린다. 옷수거함이 있는 전신주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들어가는 흙길이 있다. 회색 컨테이너박스 건물을 지나 올라서면 논길이 시작된다.

동래정씨 문중의 경고판이 눈에 띈다. 지역내 산림훼손이나 흙반출을 금한다는 내용이다. 이를 지나 왼쪽으로 살펴 보면 철제 차단기가 보인다. 오르막을 잠시 오르면 오른쪽으로 무덤들이 보인다. 두 번째 차단기를 지나면 갈래길. 오른쪽으로 꺾는다.

다음 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대여섯 발자국만 가면 왼쪽으로 치고오르는 오솔길이 보인다. 동래정씨묘 터의 아래 부분을 지나면 무덤 1기가 있다. 이를 가로지르면 외길이 시작된다. 길은 낙엽이 발목까지 수북이 차오르는 길이다. 20여분 오르면 지능선에 오른다.

은 서서히 경사를 품으며 올라간다. 1시간 가량 숨을 고르며 올라가야 하는 가파른 오르막이 기다리고 있다. 땀을 훔치며 오른 끝에 경사가 잦아지는 삼거리 산기슭에 닿는다. 이곳에서 50여�만 왼쪽 산허리를 갈라 가면 방화선에 닿는다.

고헌산은 폭 10여� 너비의 방화선이 마루금 갈라 놓고 있다. 방화선은 산불이 확산되는 것을 막고 불을 끄기 위한 인력을 쉽게 투입시킬 수 있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보기에는 이만큼 을씨년스러운 길도 없다.

방화선을 따라 산 정상을 향한다. 방화선 삼거리에서 왼쪽이다. 방화선 오른쪽 너머로 치술령 국수봉 옥녀봉 등 울주의 명산들이 든든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30여분 치고오르면 돌무더기가 있는 삼거리다. 왼쪽으로 큰 돌무더기가 있는 멧부리가 보인다. 5분만 걸어 가면 작은 정상석과 이정표를 만날 수 있다.

헌산정은 일출과 일몰 명소다. 맑은 날이면 멀리 동해바다 위로 둥실 떠오르는 해돋이를 볼 수 있다. 서쪽으로는 가지산 너머로 지는 붉은 해넘이가 황홀하다.

하산은 지나온 삼거리로 되돌아간다. 갈 길은 왼쪽 방화선을 따라 걷는 내리막. 오른쪽 경사가 심한 내리막으로 떨어지면 안된다. 그 길은 오를 때 사용했다. 내리막이 점점 경사를 더한다. 겨울철 방화선을 따라 걷는 길은 조심해야 한다. 서릿발과 잔얼음 사이로 돌부리가 널려 있어 미끄러지기 쉽다.

방화선에서 벗어나 오른쪽 기슭을 헤쳐 5분 정도 내려 가면 용샘을 만날 수 있다. 옛 언양 사람들이 기우제 때 찾던 곳으로 지금은 무속인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그러나 취재팀은 용샘으로 내려 닿는 길을 따로 열어 놓지 않았다.

 
정상에서 40분 가량 방화선을 따라가면 삼거리인 채소밭에 닿는다. 하산길은 이곳에서 찾아야 한다. 길은 채소밭 오른쪽 억새 사이에 숨어 있다. 왼쪽, 오른쪽 임도는 하산길이 아니다. 억새를 살짝 헤치면 한적한 오솔길이 보인다.

30분 가량 산허리를 돌아 내려서면 임도에 닿는다. 임도를 건너 직진하면 다시 오솔길. 15분 가량 떨어지면 밀양박씨묘 등 무덤 3기를 지나 채석장으로 나온다. 채석장 곁을 돌아 임도에 내려선다. 채석장 아래는 저수지 공사중이다. 임도를 따라 오른쪽으로 꺾어 저수지를 에둘러 나온다. 저수지 아래 마을인 상차리에는 해진 뒤에도 언양행 버스가 들어온다.

 



교통편==================================================


부산 노포동 종합버스터미널에서 언양행 시외버스를 탄다. 요금 2천6백원. 20분 간격으로 출발한다. 소요시간 1시간. 언양시외버스터미널에서는 석남사행 버스를 탄다. 오전 9시 9시40분 10시 10시20분 10시40분 등에 있다. 버스를 타고 가다 신기마을에서 내린다. 소요시간 20분 가량. 요금 630원.

산을 내려오면 상차리다. 오후 6시, 7시께 상차리에 들어왔다 언양으로 나가는 버스가 있다. 요금 650원. 언양까지 30분 가량. 나가는 버스편이 늦게까지 있으므로 산행을 천천히 시작하는 편이 좋다. 신기마을에서 낮 12시께 산행을 시작해도 넉넉히 마무리할 수 있다. 언양시외버스정류장 옆 언양시장 안에는 걸쭉한 곰탕집이 있다. 고기가 연하고, 국물이 개운한 쌀전곰탕(052-263-6846)은 장날이면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손님들이 꽉찬다. 곰탕 5천원.

/ 글·사진=박병률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