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키오토 2007. 8. 17. 00:32
 
이파리를 벗어던져 버린 나뭇가지에 눈꽃이 소담스럽게 폈다. 서리꽃으로 머리를 땋고 숫눈으로 아미를 하얗게 분칠한 겨울산은 앙징스럽기 그지없다. 사람들이 차고 매서운 바람이 몰아치는 한겨울에도 산 찾기를 마다하지 않는 것은 겨울산의 이같은 교태로움 때문이다.

입춘이 사흘 앞으로 다가온 이맘때는 서서히 산색이 바뀌는 시기다. 하지만 올해는 어느해보다 눈발이 많았던 탓에 좀처럼 산마루에 걸친 하얀 실루엣이 햇볕에 녹아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남도 3백리에도 눈풍년이 들었다. 그 덕에 근교산에도 은백색 분가루가 산허리춤 위로 그들먹하게 쌓였다.

부산 근교에서 가장 가까우면서 가장 풍성히 눈 맛을 즐길 수 있는 곳은 단연 영남알프스다. 가지산 신불산 재약산 등 1,000m가 넘는 육중한 산들이 어깨 두른 이곳은 지난 겨울부터 하얀 능선들이 푸른 하늘을 받치며 줄기를 이어가고 있다.

 
 이에 근교산 취재팀도 이번주 산행은 백색 갈기를 멋드러지게 세운 영남알프스의 영축산 동릉으로 떠나기로 했다.

영축산은 영취산 혹은 취서산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영축산이라는 산이름은 산세가 석가모니가 설법을 전파한 인도의 「영축산」과 비슷하다는 데서 연유했다. 영취산은 영축산을 한자발음 그대로 읽은 것. 반면 국립지리원이 펴낸 지도에는 날개를 편 독수리가 사는 것 같은 산세를 가졌다는 의미의 취서산(鷲棲山)이라 표기돼 있다. 이처럼 지명에 혼선을 빚자 지난달 양산시 지명위원회는 모임을 갖고 이 산을 「영축산」이라 부르기로 최종 결정했다.

영축산 동릉의 산행 구간은 「울주군 방기리~알바위~학성이씨 가족묘~3거리~바위전망대~도로공사 무인시설~영축산(1,092m)~3거리~샘터~바위전망대~양산리 지산리 지산마을」이다. 소요시간은 4시간 30분~5시간.

이 코스는 한나절이면 충분해 가족산행으로도 적격이다. 산 중턱까지는 낙엽이 많은 포근한 육산이어서 체력을 비축하기 좋고, 정상부근에는 눈덮인 암봉이 절경을 이뤄 겨울산행 맛을 마음껏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교통편이 좋아 등산과 하산 시간에 크게 구애 받지 않으므로 초보자 혹은 단체산행자들에게 알맞다. 하지만 겨울산행에서 방심은 금물이다. 정상으로 오를수록 기상변화가 심하고 단애를 타고 오르는 찬바람이 예사롭지 않다.

 
 신평버스정류장에서 언양행 좌석버스를 타고 방기 SK 주유소 앞에서 내린다. 주유소에서 정면으로 오롯이 솟은 산이 영축산. 도로 건너 「방기리 하방」 표지석을 확인한 뒤 산쪽으로 이어지는 도로를 따라 방기천을 왼쪽에 끼고 걷는다. 140� 들어가서 만나는 울산시 기념물 10호 「방기리 알바위」는 작은 볼거리. 달걀을 반으로 잘라 놓은 것 같은 문양을 바위에 새겨놓은 이 유적은 청동기 시대 제사터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알바위에서 경주최씨 재실인 은사문(恩思門)을 지나 3거리에 맞닿아있는 상방마을 주차장까지 15분 정도 걸린다.

「해광도예 10m」라 적힌 이정표를 보며 오른쪽으로 길을 틀면 논길 끝에 독립가옥이 터잡고 있다. 이 가옥에서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100여m 떨어진 곳에 학성 이씨 가족묘지가 나타난다. 이곳이 들머리.

묘지를 지나면 호젓한 오솔길이 고개마루 3거리까지 이어진다. 직진해 고개를 넘어가면 포사격장으로 빠지므로 왼쪽으로 돌아 치받이길로 들어선다. 이 길을 따라 은색의 서릿발을 서걱서걱 밟으며 쉼 없이 1시간 가량 치고 오른다.

산불이 난 흔적이 곳곳에 내비치면서 억새와 관목들이 뒤섞여 있는 완경사 구간이 나왔다 들어가기를 반복한다.

북쪽으로 보이는 신불산의 공룡능선을 따라 가르마처럼 이어지는 오르막을 30분여 더 오르면 바위전망대다. 바위전망대 아래로 깎아지를 듯한 금강골이 시원스레 펼쳐지고 그 절벽을 타고 겨울 칼바람이 날카롭게 솟구쳐 오른다. 동쪽으로는 방기리의 넓은 벌판과 삼성전관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오고, 북쪽으로는 폭이 넓은 치마처럼 암벽을 둘러내린 아리랑 릿지의 설경이 장관을 이룬다.

독수리 머리처럼 생긴 정상부근 암봉을 예견하듯 이곳에서부터는 크고 작은 암석들이 머리를 내밀다 집어넣기를 시작한다. 험하지는 않지만 아래를 내려다보면 가슴을 쓸어내릴만큼 깊은 낭떠러지가 걸음을 더디게 한다.

바위전망대 100여m 위에 세운 한국도로공사의 무인시설을 지나 10여분 더 치고오르면 정상 바로 아래의 3거리 안부다. 왼쪽은 지산마을을 거쳐 통도환타지아로 떨어지는 길이다. 곧장 앞으로 나가면 영축산 정상. 정상길은 곳곳에 암반이 자리한 된비알인데다 짙게 깔린 산그림자로 눈이 발목까지 차있어 오르기가 쉽지 않다.

20여분 눈을 헤치고 오르면 하얀 영축산 정상이 드러난다. 영축산 정상은 영남알프스를 한눈에 담을 수 있는 조망으로 이름높다. 능선을 따라 북쪽으로는 신불산이 버티고 시계방향으로 문수산 원효산 금정산 향로봉 운문산이 차례로 머리를 내민다. 하지만 정상의 풍광을 여유롭게 즐기고 싶다면 사전에 덧입을 수 있는 등산복을 준비해 가는 것이 좋다. 사방에서 매몰찬 골바람이 솟구쳐 귓볼과 손등이 금세 벌겋게 얼어버릴 정도이기 때문이다.

하산길은 서쪽 시살등 방향이다. 능선을 타고 10여분 내려서면 「비로암」「시살등」으로 가는 3거리 이정표가 서있다. 일단 좌측으로 꺾어 비로암가는 길로 들어선다. 그러나 취재팀은 300여m 아래 샘터에 이르러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영축산 정상에서 곧바로 아래로 내리닫는 능선을 탔다. 바위가 많고 눈과 얼음이 알기살기 뒤엉켜 있어 엉덩방아를 찧을만한 구간이 곳곳에 숨어있다. 35분쯤 엉금엉금 내려닿으면 이번 산행의 가장 멋진 바위전망대를 만난다. 계곡 건너 만물상으로 조각한 헌걸찬 천길 낭떠러지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단애 위에 살짝 얹힌 흰눈들이 저무는 햇살속에서 반짝거릴 때면 마치 금강산에 온 듯한 착각에 빠질 정도다.

황홀했던 눈구경은 전망대가 끝이다. 전망대 아래부터는 다시 양지바른 길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전망대에서 10여 걸음 뒤로 물러나와 왼쪽으로 떨어지면 백색은 홀연히 사라지고 갈색이 그자리를 대신한다. 아름드리 홍송을 헤치며 솔가리와 떡갈나무, 신갈나무 낙엽길을 밟으면 피로해진 영혼이 서서히 풀린다. 흙길을 30여분 내리닫으면 오른쪽으로 비로암 팔작지붕이 살며시 고개를 내민다. 비로암으로는 가지않는다는 생각으로 트래버스해 왼쪽으로 길을 잇는다. 20여분 뒤 계곡을 건너 넓은 임도에 내려선다. 임도에서 왼쪽으로 걸음을 옮겨 고갯마루를 넘어서면 철조망을 두른 농장이다. 이 농장을 지나 15분 남짓 더 임도길을 따르면 십여그루의 홍송이 반기는 지산마을 버스정류장에 닿는다.

 


# 교통편


 이번 산행은 교통편이 아주 편리하다. 명륜동 동부시외버스 터미널에서 신평행 버스를 탄다. 오전6시30분부터 20분 간격으로 떠난다. 요금은 2천원. 소요시간은 45분. 신평 시외버스터미널에서는 언양으로 넘어가는 완행버스를 탄다. 12번 버스가 수시로 온다. 요금은 7백원이며 소요시간은 5분 정도. 방기 SK 주유소 앞에서 하차해 들머리를 찾는다.

지산마을로 하산하면 곧바로 버스정류장이다. 이곳에서는 1시간 간격으로 신평행버스가 기다리고 있다. 4시50분, 5시50분, 6시50분 등 50분 마다 출발한다. 막차는 8시50분. 요금은 6백원이며 신평버스정류장까지 약 20분 걸린다.

신평버스정류장 부근에 양주한우돼지 생고기직판장(055-384-3800)이 있다. 살코기가 연하고 신선하다.

신평에서 부산까지 직행버스는 20분마다 1대꼴로 있다. 막차는 오후8시40분. 직행을 놓쳤더라도 부산완행을 타면 된다. 15분 간격으로 출발하며 막차는 밤9시40분이다. 요금 2천원.

북구나 사상구 쪽에 산다면 시간에 맞춰 구포행 버스를 타는 것도 좋다. 구포완행이 오후4시26분, 6시28분 등에 있다.




박병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