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신문산행기/부산근교산

영도 봉래산

모스키오토 2007. 8. 14. 12:33
오늘이 몇일이지’. 청명한 가을날, 산에 오르다 갑자기 떠오른 의문에 적잖이 당황한다. 최근 벌어졌던 중요한 일들을 하나씩 반추해가면서 열심히 날짜를 꿰맞춰 보지만 답은 신통찮다. 이쯤되면 ‘내가 지금 뭘하고 있나’ 하는데 까지 생각이 미친다.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일상에 파묻혀 존재의 의미를 잃어가는 것은 아닐까 불안이 불현듯 엄습한다.

산이 주는 즐거움 가운데 하나는 일상으로 부터의 탈출을 허용한다는 것. 한 번쯤 자신이 서 있는 자리에서 한발 물러서 돌아보게 하는 마력을 산은 갖고 있다.

특히 바쁘다는 핑계로 가족들과 유리된 생활을 해 왔다면 함께 봉래산을 찾아가자. 영도에 있어 시간을 많이 들일 필요가 없다. 해안을 따라 난 두 개의 산책로를 연달아 걷는 즐거움은 비할 데 없이 크다. 금정산 백양산 장산 등 부산의 유명한 산에 비해 많이 알려지지 않았으면서도 섬이란 특성이 빚어낸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는 곳이다.

혹시 ‘부산에 있는 산, 다 그렇고 그렇지’ 하는 의심이 든다면 그에 대한 답은 “좀 가마이 나 도라”는 영도 산악인의 원망섞인 눈길로 대신한다. 산허리를 잘라 산책로의 일부 구간을 만들었다는 사실이 좀 마뜩찮을 뿐 적극 추천할 만한 코스다.

산행코스는 태종대 입구~자갈마당 주차장~감지해변 산책로~중리~절영해안 산책로~백련사~영선사 갈림길~체육공원~봉래산(394.5�)~자봉~손봉~목장원. 3시간30분에서 4시간 정도 걸린다.

태종대 정문 자유랜드 앞에서 오른쪽 감지해변으로 빠진다. 주차장을 지나면 감지해변 산책로 조성 기념비가 보인다. 산책로를 따라 몇걸음 올라서면 왼쪽에 사슴사육농장. 5분쯤 완만한 오르막을 지나면 체육공원이 나온다. 아래로 감지해변이 펼쳐진다. 뒤로는 등대가 있는 주전자섬이 살짝 고개를 내밀고 아득한 절벽 아래에는 엉덩이 하나 얹기도 힘든 좁은 여 마다 어김없이 낚시꾼이 앉았다.
 

삼거리에서 직진. 바다는 눈 앞에서 사라지고 숲속으로 들어간다. 100�쯤 가면 약수터. 큰 파이프를 통해 약수가 졸졸 흐른다. 양은 적지만 맛은 담백하다. 약수터를 지나면 오른쪽으로 휘도는 지점에서 큰 길을 나와 철봉이 선 왼쪽 산길로 들어선다. 입가에 미소를 번지게 하는 철봉이다. 손잡이만 쇠로 만들어졌고 나머지 부분은 나무다.

바다를 보고 내려선다. 10분 정도면 중리해변 해녀촌. 해녀들이 직접 잡은 굴 멍게 소라 등을 판다. 방앗간을 그냥 지나칠까. 처음에 5천원어치만 팔아달라던 할머니 해녀는 흥정이 진행될수록 “1만원 어치만…, 1만5천원어치만…”하면서 갈수록 요구사항이 많다. 제주출신인 이들이 주고 받는 대화소리가 얼마나 큰 지, 부산대표 자갈치 아지매는 ‘저리가라’다.

벽화가 그려진 담을 따라 횟집촌을 빠져나가면 부산해양경찰서 중리파출소가 있다. 절영해안 산책로 위치표시 ‘17번’ 지점. 8·5광장 오르는 길을 지나면 장미터널을 통과한다. 잠시 뒤 7·5광장 오르는 길 말고 노래미바위낚시터로 직진한다. 곧 바로 절영해안 산책로 전망대가 나온다. 대마도 전망대와 함지골 해녀촌을 지난다. ‘다라라라라라락…’. 바닷물에 쓸려가는 자갈이 리듬감 실린 소리를 낸다.

산책로 ‘3번’위치에서 오른쪽으로 보면 백련사가 있다. 좁은 골목길을 빠져나와 횡단보도를 건넌다. 백련사 입구에 오른쪽으로 오르는 등산로가 있다.

서서히 오르막. 10분이면 영선사 갈림길이다. 직진. 완만한 오르막이 평지로 바뀌는가 싶더니 이내 임도를 만난다. 임도따라 왼쪽으로. 인근 사격장에서 들리는 총소리를 구령삼아 발을 맞춰본다. ‘탕 탕탕 탕 탕탕’.

임도가 싫으면 영선사로 갈라지는 지점을 지나자 마자 왼쪽으로 오르는 희미한 길을 따라 올라서도록. 임도 끝지점에서 만난다. 임도 끝에서는 오른쪽으로 체육공원이 보인다. 이때부터 정상부근까지는 제법 가파르다. 15분 쯤 오르면 함안 조씨묘. 철탑이 선 지점 옆 높은 봉우리가 정상이다. 30분 정도 올라야 한다.

 
[해안선을 따라 난 절영해안 산책로 . 기암괴석 사이로 바닷바람을 맞으며 걷는 맛이 일품이다.]


봉래산 정상에는 할배바위가 있다. 그래서 조봉(祖峰)이라고도 불린다. ‘단상에 올라가지 마세요’라고 적힌 바위다. 좀더 시원한 조망을 볼 요량으로 무심코 올랐다가는 “당장 내려오세요”라는 핀잔을 듣기 일쑤다. 영도 사람들이 수호신처럼 경외감을 갖는 바위이기 때문이란다.

하산은 한국해양대학교를 왼쪽에 두고 난 능선길을 따라 시작한다. 바닷물 밀려가는 것이 물고기 비늘처럼 반짝인다. 정상에서 5분이면 ‘산길조심’ 경고문이 선 갈림길. 직진한다. 왼쪽은 동삼주공아파트, 오른쪽은 사격장으로 내려간다.

다시 5분이면 자봉(子峰)에 도착한다. 봉우리는 평평하고 풀만 무성하다. 누군가 정원수처럼 다듬어 놓은 나무가 있다. 엎어놓은 술잔처럼 생겼다.

부산항을 드나드는 고속여객선 지나간 자국이 선명하다. 탈탈 턴 지우개로 빡빡 닦아 깨끗한 칠판에 자를 대고 분필로 선을 죽 그은 것 같다.

그 다음 봉우리는 손봉(孫峰). 제단처럼 평평하게 쌓은 돌무더기가 있다. 이곳을 지나면 쏟아지는 내리막이다. 바로 아래 불쑥 솟은 전망대가 있다. 가끔 추락사고가 나는 곳이므로 올라설 때는 주의.

15분이면 임도에 닿는다. 돌아보면 위에서 보던 경치 못지않게 좋다. 임도를 타고 오른쪽. 바로 나오는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5분이면 목장원 주차장이 나온다.

 .
떠나기전에
영도는 예로부터 말(馬)과 인연이 많은 곳이다. 목마장으로 유명해 그림자 조차 따라오지 못할 정도로 빨리 달리는 명마, 즉 절영 명마를 생산한 섬으로 절영도가 줄어져 영도란 이름이 나왔다.

원래 봉래산이란 동쪽바다 한 가운데 있어서 신선이 살고 불로초와 불사약이 있다는 상상속의 영산이다. 봉황이 날아드는 산이라는 의미로 영도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다.

산 전체가 원추형이며 산록의 사면은 가파른 편이다. 특히 남쪽 사면은 급경사로 바다에 거의 내리박듯 수직으로 돌입한다. 산기슭에는 기계적 풍화작용에 의해 쪼개진 바위가 점점이 흩어져 있다.

봉래산을 일제시대에는 고갈산으로 불렀다. 목이 마른 산 혹은 말라서 없어지는 산이란 뜻이다. 일본이 산의 기세를 꺾어 한반도 점령의 교두보로 삼기 위해서였다. 우리의 옛 이름인 봉래산으로 불러야겠다.

태종대 주차장에서 이어지는 감지 해변 산책로는 군사 작전지역으로 최근까지 출입 금지구역으로 묶여 있었다. 그 만큼 깨끗함을 유지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절영해안 산책로까지 이어지는 동안 부산 앞바다의 푸름에 놀랄 것이다. 해안가에서 보는 바닷물은 지리산 계곡물 만큼이나 맑고 투명하다. 식수는 미리 준비. 가벼운 발걸음으로 온가족이 함께 푸른 가을하늘을 찾아 떠나보자.

지하철 1호선 남포동 역에서 내려 남포파출소 앞에서 태종대행 버스를 타면 된다. 8, 13, 88 101번 등 많다.
 

 

 

/ 글·사진 = 김용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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