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름 가마솥 불볕더위에 두 손 들고 지팡이를 접은 산꾼들이 다시 등산화 끈을 조여매기 시작했다. 바야흐로 일년 중 가장 산행하기 좋다는 가을이 찾아온 때문이다.
문제는 산행지. 체력은 고려하지 않고 대책없이 명산이라고 무리를 했다가는 초반에 무너질 공산이 아주 크다. 두어 달 쉰 무릎과 발목이 멀쩡하다면 되레 그게 비정상이다.
서서히 체력을 끌어올려야 한다. 동네 뒷산부터 시작해 이동 거리와 해발을 동시에 점차적으로 높여 나가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다.
동네 뒷산이야 문제는 없을테고 다음 단계인 부산의 근교산 선택에 고민이 많을 터. 금정산이나 장산 황령산 등은 사람들이 너무 많이 찾아서 그렇고 기장쪽 산도 근래 들어 알려질 대로 알려져 호젓한 산행은 곤란할 듯하다.
강서구 보배산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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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서구 보배산 정상 직전의 전망대에 서면 부산의 미래 서부산권의 위용이 한눈에 펼쳐진다. 정면에 가덕도와 연대봉이, 가덕도 우측 뒤로 거제도가, 그 앞으로 올해 조기 개장한 신항 북측컨테이너부두가 시야에 들어온다. 그 앞으로 녹산산단과 용원CC가 보인다. 왼쪽 아래가 들머리이고 사진에선 잘렸지만 가덕도 왼쪽으로 진우도 다대포 승학산 등도 확인된다. | |
1300리를 쉼없이 달려온 낙동강의 고단한 물길과 연대봉이 우뚝 솟은 가덕도가 떠 있는 남해 바다, 부산을 넘어 대한민국의 대역사로 현재 공사 중인 신항, 누렇게 고개를 숙이기 시작한 황금들녘 김해평야, 부산의 새로운 동력 녹산산단과 지사과학단지 등의 현장을 한눈에 볼 수 있다.
보배산은 부산 강서구와 경남 진해시의 경계를 이루는 봉우리다. 해발 479m로 야트막한 산이지만 그래도 강서 지역에서 가장 높다. 가덕도의 최고봉인 연대봉보다 20m나 더 높다.
원래 명칭은 보개산(寶蓋山)이었다. 말 그대로 보물을 덮어 놓은 산이다. 근데 최근에는 보배산이라고 더 알려져 있다. 산 아래 가게의 간판에도 대부분 보배산으로 통일돼 있다. '보개'든 '보배'든 여하튼 보물이 묻혀 있는 산인 것만은 분명한 듯하다.
하산길에는 옛 가락국 허황후의 도래설이 전해오는 명월사지가 있다. 대웅전 옆에 위치한 '가락국 태조왕 영후 유허비'가 이를 잘 대변해 준다. 가락국 때의 옛 명월사 자리에 지금은 흥국사라는 절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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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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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포마을'이라 적힌 이정석을 보고 오른쪽으로 간다. '용지도예, 주포경로당, 웅천도자기연구소'라 적힌 간판을 보고 잇따라 걸으면 경주이씨 재실. 마을 주변의 논에는 이제 벼가 누런 빛을 띠며 고개를 숙이기 시작했다.
재실 왼쪽 포장로를 따라 간다. 첫 갈림길. 우측 '가주길 316'이란 명패가 붙은 박태지 씨 집 왼쪽 담벼락을 따라 시계 방향으로 돌면 폐가와 또 한 채의 조그만 집을 만난다. 여기서 오른쪽으로 50m쯤 가면 길모퉁이에 산길이 열려 있다. 들머리다. 주변의 하늘을 향해 쭉쭉 뻗은 아름드리 소나무가 보기만 해도 시원하다.
들머리로 접어들자 길이 왼쪽으로 휘어지며 오름길이 시작된다. 점차 경사도가 심해진다. 15분쯤 뒤 쓰러진 나무를 지나면 주변이 온통 미국자리공 군락지. 줄기가 빨갛고 검붉은 빛의 열매가 맺혀 있는 이 식물은 산성땅의 지표식물이자 유독식물로 알려져 있다. 이곳을 다녀간 산꾼들이 이를 아는지 대부분 꺾어 놓았다.
계속되는 된비알. '갈 지(之)' 자 옛 길에 붉은 빛 솔가리가 운치를 더해준다. 1시간 남짓 정신없이 오르면 주능선에 닿는다. 오른쪽은 장고개 봉화산 옥포마을 가는 길, 산행팀은 정상을 향해 왼쪽으로 간다. 잇단 전망대를 지난다. 방금 올라온 주포마을과 용원CC, 가덕도와 연대봉, 신항 등이 펼쳐진다.
주능선에서 25분쯤 뒤 삼거리. 왼쪽은 방금 올라온 주포마을 방향, 오른쪽으로 직진한다. 여기서 6분 정도 안 보이던 바윗길을 오르면 보배산 정상. 윗부분이 깨진 조그만 정상석이 하나 서 있고, 그 위에는 측량용으로 세운 듯한 흉물스런 철구조물이 서 있는 그늘 한 점 없는 밋밋한 산정이지만 조망은 시원하게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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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월산 흥국사 대웅전과 사적비. | |
북동쪽으로 불모산 굴암산 신어산 마병산이, 남쪽으로 가덕도와 신항 거제도가, 남동쪽으로 녹산산단 진우도 명지 낙동강하구둑 하단 다대포 몰운대, 저 멀리 금정산도 확인된다.
하산은 올라온 길을 기준으로 왼쪽(남서쪽) 방향, 다시 말해 국립지리원 안내문과는 반대편쪽으로 내려선다. 등로가 크게 우측으로 에돌아간다. 하얀 참취꽃이 반긴다. 7분쯤 뒤 갈림길. 왼쪽은 두동고개를 거쳐 마병산 가는 길, 산행팀은 오른쪽으로 간다. 이때부터 호젓한 산길. 그것도 잠시, 낮은 무명봉을 하나 가볍게 넘으면 갈림길. 왼쪽으로 방향을 잡고 10여 분 걸으면 손상된 묘지. 오른쪽으로 간다. 왼쪽이 지사동 부산과학산업단지, 약간 우측에 방금 내려온 보배산이 보인다. 왼쪽 저 멀리 백양산과 승학산, 학장 엄궁쪽 아파트가 시야에 들어온다. 4분 뒤 안 보면 좋았을 흉칙스러운 장면이 목격된다. 우측에 보배산이 손에 잡힐 듯한 가운데 정면에 가덕광산이 시야에 들어왔다. 골재 채취를 하느라 산사면을 아예 갉아먹었다.
이어지는 산길. 4분 뒤 무덤. 왼쪽으로 가면 이내 갈림길. 두 길이 곧바로 만난다. 이번엔 잇따라 세 군데의 무덤터가 나온다. 순서대로 각각 왼쪽, 오른쪽, 왼쪽으로 간다. 이후엔 설상가상으로 길찾기가 더 힘들어져 리본을 촘촘히 달아놓았다.
또 다시 능선상의 갈림길. 직진길을 버리고 오른쪽 토끼길 같은 입구를 내려서면 뚜렷한 계곡의 산길이다. 비로 인해 파헤쳐진 숲길을 힘겹게 통과하면 또 다시 미국자리공 군락지. 숨이 탁 막히지만 자세히 보면 왼쪽으로 사찰 내 전각의 기와지붕이 보인다.
한 숨 돌리고 우측으로 내려서면 흥국사 뒤뜰 감나무밭. 왼쪽으로 20m쯤 가면 미륵전에 이어 삼성각, 그리고 대웅전을 만난다. 절에서 지사동 명동마을까지는 15분 걸린다.
# 떠나기전에
- 흥국사 대웅전 옆에 '가락국 태조왕 영후 유허비'
낙남정맥은 말 그대로 낙동강 남쪽으로 내달리는 산줄기다. 지리산 영신봉에서 출발한 낙남정맥 산줄기는 창원과 진해의 경계인 불모산에서 두 갈래로 나뉜다. 하나는 용지봉 신어산 동신어산으로 내달려 낙동강 본류에서 그 맥을 다하고, 또 하나는 화산 굴암산 마병산 보배산을 거쳐 봉화산에서 서낙동강으로 떨어진다.
전자의 산줄기가 산꾼들이 흔히 말하는 낙남정맥이다. 하지만 최근 정맥을 즐기는 일부 산꾼들은 후자도 낙남정맥이라고 칭하며 산을 타고 있다. 실제로 보배산 정상석에는 '낙남정맥 남단'이라고 음각돼 있다.
이 때문에 향후 보배산도 정맥꾼들을 비롯한 일반 산꾼들의 발걸음이 잦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보배산 동북쪽 기슭에 위치한 날머리 흥국사(興國寺)는 옛 명월사터에 지난 1956년 중건된 사찰이다. 명월사는 가락국 때 수로왕과 허황후가 관련이 있는 가야불교의 발전지이다. 수로왕이 허황후를 받아들여 산신에게 폐백을 드린 산이 명월산이며, 그 산기슭에 위치한 절이 명월사이다.
이를 입증하는 자료로 대웅전 왼편에는 '가락국 태조왕 영후 유허비'가 남아 있다. 또 요사채 옆 극락전에는 석탑의 한 탑신으로 쓰인 석탑면석인 사왕석(巳王石)이 있다. 두 마리의 뱀이 부처를 호위하고 있는 형상이다. 이는 남방불교 전래설을 입증한다. 흔히 산꾼들은 흥국사를 보배산 북동쪽 기슭에 위치해 있다고 하지만 흥국사 안내판과 주지 서봉 스님은 절 뒷산을 명월산이라고 했다.
# 교통편
- 지하철 하단역서 옥포행 16번타고 주포마을 하차
부산 지하철 1호선을 타고 하단역 5번 출구로 나오면 만나는 대림약국 앞에서 옥포(마을)행 16번 마을버스를 타고 주포마을에서 내린다. 참고로 주포마을은 용원CC 가는 인근에 위치해 있다. 오전 7시25분, 9시55분, 11시55분. 900원.
날머리 명동마을에서 하단행 12번 마을버스는 오후 2시10분, 4시, 6시, 8시(막차)에 출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