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장흥 천관산(天冠山·723m)은 웬만한 산꾼이라면 벌써 다녀왔거나 아니면 한 번쯤 가봤으면 하는, 그래서 추후 등반계획에 반드시 포함돼 있는 꽤 이름있는 산이다.
지리산 월출산 내장산 내변산과 함께 호남의 5대 명산 중 하나인 천관산은 기암괴석으로 대표된다. 상상도 못할 만큼 오묘한 수석 전시장을 방불케 하지만 한편으론 천재 조각가들의 작품을 산 전체에 골고루 진열해놓은 것 같기도 하다. 혼자 보기 아까운 기암과 괴석은 누가 언제 어떻게 옮겨 놨을까 하는 괜한 상상의 나래를 펴게 만든다. 조선시대 인문지리서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 ‘천관사에서 남쪽을 바라보면 오똑한 것, 숙인 것, 우묵한 것, 입벌린 것, 울퉁불퉁한 것 등 기이한 암석이 많다’는 대목은 이를 잘 대변해주고도 남는다. 천관산은 수십개 봉우리의 솟은 모습이 마치 주옥으로 장식된 천자의 면류관을 닮아 붙여진 이름. 가끔 흰 연기 같은 이상한 기운이 서린다 하여 신산(神山)이라고도 불린다. 도립공원인 천관산은 흔히 이웃 영암의 월출산에 비유된다. 하늘을 찌를 듯 솟아 있는 잇딴 암봉과 산행 도중 만나는 광활한 억새밭의 화려한 장관이 이 두 산의 특징이기 때문이다. 차이점이라면 기암괴석의 덩치와 억새밭의 규모. 예쁘고 날씬한 몸매지만 키가 작아 미스 코리아에 선발되지 못하는 ‘아담 사이즈’의 수줍은 숙녀를 천관산에 비유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하지만 천관산 옹호론자들은 월출산의 기암들은 크고 웅장한 멋은 있지만 산세가 험해 원하는 만큼 다양한 각도에서 감상하기 어려운 반면 천관산은 멀리서 또는 가까이에서 맘껏 돌아보며 탐승할 수 있다고 말한다. 또 한가지. 산행 도중이나 정상에서 바라보는 다도해의 막힘없는 조망 또한 천관산의 자랑이다. 산행은 도립공원 관리사무소~양근암~정원암~주봉 연대봉~억새밭~대장봉(환희대)~구룡봉~환희대~천주봉~대세봉~노승봉~종봉~금강굴~체육공원~장천재~도립공원 관리사무소 순. 4시간~4시간30분 걸린다. 도립공원 관리사무소 앞 등산안내도와 육각정자 영월정 사이의 계단을 오르면서 산행은 시작된다. 곧 등산로 이정표가 나온다. 왼쪽은 양근암 경유 연대봉(제1코스), 오른쪽은 금수굴 경유 연대봉(2코스)과 금강굴 경유 연대봉(3코스). 어느 쪽으로 올라도 원점회귀가 가능하다. 산행팀은 1코스로 올라 3코스로 하산하는 길을 택했다. 1코스로 올라야 제대로 기암괴석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 힘들지 않는 오르막의 연속이다. 처음엔 소문과 달리 육산이지만 20분쯤 지나면 점차 바위들이 본색을 드러낸다. 이때부터 바위와의 전쟁이 시작된다. 오르고, 넘고, 에돌고 그리고 감상하고….
‘연대봉 2.2㎞’ 이정표를 지나면서 이번 산행길 전체를 조망할 수 있다. 저멀리 왼쪽 능선을 타고 시계방향으로 돌아 오른쪽 기암괴석을 감상하면서 하산한다. 왼쪽에는 다도해의 푸른 물결이 출렁이고 염전도 보인다. 각양각색의 바위군이 발걸음을 잡는다. 가만히 서서 이름을 붙여본다. 식빵바위, 등잔바위, 고래가족바위 등등. 흡사 돌아보기 좋게 큐레이터가 전시해 놓은 것 같은 모양새다. 정면에 주봉인 연대봉이 살짝 고개를 내밀 무렵 눈앞에 남성의 성기를 빼닮은 양근암이 서있다. 어쩜 이리도 닮았을까. 양근암 앞 능선엔 여성의 성기를 닮은 금수굴이 마주보고 있어 자연의 오묘한 조화에 놀라움을 금할 길이 없다. 10분 후엔 정원암. 모진 풍랑으로 인해 바닷가에 있어야 할 대형 수석같은 바위가 산속에 있어 신기롭기까지 하다. 정원암을 지나면 이때부터 억새밭. 갑자기 다른 산에 온 느낌이다. 15분쯤 뒤 주봉인 연대봉. 연대봉에는 사실상 전망대 역할을 하는 봉화대가 있다. 고려 의종때인 1160년께 설치된 이후 연대봉 또는 봉수봉으로 불렸다. 남쪽으론 완도의 신지 고금 약산도 등이 올망졸망 떠있고, 동쪽엔 고흥의 팔영산이, 서쪽엔 두륜산이, 북쪽엔 월출산이 시야에 들어온다. 맑은 날엔 멀리 한라산과 담양의 추월산, 속리산 문장대도 보인단다.
하산은 환희대 방향. 시든 억새가 바람에 휘날리는 가운데 헬기장을 지난다. 오른쪽 멀리 제석산 사지봉과 일임산이 보이며 정면에는 천관산의 자랑인 기암괴석이 가까이 다가온다. 10분쯤 뒤 대장봉의 정상인 환희대. 이곳에 오르면 누구나 성취감과 기쁨을 맛볼 수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대부분 이곳에서 활짝 웃으며 기념촬영을 한다. 바위 꼭대기에서 아홉마리의 용이 노닐었다는 구룡봉은 이곳에서 15분 거리. 도중에 부부처럼 정답게 서있는 부부봉, 관세음보살이 불경을 실었던 돌배의 돛대를 닮았다는 진죽봉이 옆능선으로 펼쳐진다. 구룡봉에는 금정산 금샘과 같은 웅덩이가 수십 개 있고 일부는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다고 한다. 발밑에는 인도의 아육왕이 신병(神兵)으로 하여금 하룻밤 사이에 인도와 우리 나라에 탑을 쌓게 했다는 전설을 간직한 아육왕탑도 보인다.
되돌아와 환희대를 거쳐 본격 하산길로 내려가며 각양각색의 기암을 감상하자. 하늘을 떠받치는 듯한 천주봉(天柱峯)과 대세봉, 노승의 인자한 얼굴을 연상시키는 노승봉을 지난다. 종봉(鐘峯) 바로 밑 샘터가 있는 금강굴에 닿으면 산행은 거의 막바지. 20여분 뒤 체육공원과 장천재(長川齋)에 잇따라 닿고 여기서 2~3분이면 들머리였던 도립공원 관리사무소. 장천재는 조선 후기 실학자 존재 위백규 선생을 위시한 장흥 위씨의 문중 사우(祠宇). 주변엔 600년된 소나무와 절정인 단풍나무, 때이른 동백꽃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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