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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허리까지 내려온 운무를 뚫고 9부 능선의 운주암(雲住庵)에 올라서자 찬물이라도 한바가지 뒤집어 쓴 것처럼 정신이 또렷해져 온다. 깎아지른 벼랑에 겨우 걸터앉듯 들어선 암자. 좁은 절 마당의 한 쪽 끝이 수십길 낭떠러지인데도 그 흔한 안전용 철책 한 조각 둘러치지 않았다. 「위험 접근금지」라고 적힌 문패만한 크기의 푯말이 안전시설의 전부다. 칼날같은 화악산(華岳山·931.5m)능선을 닮은 「날 선」 수도정신마저 느껴진다.
「밀양 형제봉∼청도 화악산」산행로는 육산의 산길을 단순하게 걷는 워킹산행로로 청도의 명산 화악산의 언저리에 접어든 뒤, 가파른 급경사 구간을 타고 단숨에 화악산 정상을 밟는 순서로 구성되어 있다.
화악산의 면모는 근교산동호인들 사이에 잘 알려져 있지만 밀양 형제봉을 통해 올라가는 코스는 미답에 가깝다. 그럼에도 들머리에 해당하는 형제봉은 산세가 순하고 요리조리 또렷한 산길이 잘 뚫려있어 편한 마음으로 산행에 나설 수 있다. 전체 구간에 걸쳐 길 상태가 좋은 편인 것은 장점이지만 갈수록 경사가 점점 심해져 막판에 쓸 체력을 미리 안배해 둬야겠다.
산행경로는 경남 밀양시 청도면 고법리 미리벌연수원 하차∼고법작목반농산물집하장∼재실∼내곡저수지(청룡쉼터)∼505.3m봉(삼각점·쌍둥이봉우리중 오른쪽)∼형제봉∼봉천고개(운주암 표지판)∼운주암∼화악산주능선∼화악산정상∼청도군 청도읍 평지마을 하산으로 이어지다. 7시간∼7시간30분 소요.
밀양시외버스터미널에서 「구기」행 농어촌버스로 시골길을 45분 가량 달려야 산행초입인 고법마을에 도착한다. 차를 내리는 곳은 미리벌연수원. 마을로 들어가는 길을 따라 5분 곧장 가다 2차선 아스팔트도로를 만나면 왼쪽으로 꺾어 고법작목반 농산물집하장을 보고 걸어간다. 5분이면 「불이문(不二門)」이라는 현판이 걸린 재실건물앞에 도착하고 여기에서 왼쪽 샛길로 올라서서 잠깐 논둑길을 걸으면 농로에 올라선다. 오른쪽으로 꺾어 농로를 따라 7∼8분 올라서면 내곡지라는 작은 저수지에 닿으면서 길은 끝난다. 저수지에는 「청룡쉼터」라는 작은 간판을 내건 컨테이너 가건물이 있다. 이 쉼터도 식수가 부족한 곳이므로 물은 마을에서 미리 준비해야 한다.
컨테이너건물 곁에는 깨끗한 비석이 서 있는 묘지가 모셔져 있다. 묘지 뒤로 접어들면 산행이 시작된다. 15분이면 첫 안부에 도착한다. 안부에서 왼쪽으로 꺾어 15분 더 나가면 양쪽으로 길이 열리는데 산 아래서 올려다 보았던 쌍둥이같은 2개의 봉우리 사이 지점이다. 오른쪽 길을 택해 15분 정도 더 올라서면 삼각점이 있는 봉우리 정상이다. 길은 좋지만 계속되는 오르막이라 제법 숨이 차 오른다. 이 쌍둥이 봉우리야말로 「형제봉」이라는 이름에 딱 어울리는 형세이지만 삼각점말고는 아무런 표지판도 없어 확인하기는 힘들다. 부산 「두타산악회」의 산행리본이 유난히 눈에 많이 띈다. 봉우리를 내려서서 50분 정도 얌전한 능선길을 가자 봉긋 올라섰던 길이 내리막으로 바뀌려 한다. 이 지점이 지도상에 표시된 형제봉 정상이다. 하지만 평범하기 그지없는 숲속인데다 아무런 표시판조차 없다. 이 능선상의 꼭지점에서는 왼쪽 아래로 내려서야 한다. 능선을 이탈하는 기분으로 가야하는데 국제신문리본 몇 장으로 입구표시를 해두었다. 또렷한 오솔길을 따라 10분만 더 가면 임도가 지나가는 봉천고개에 닿는다. 길이 네갈래로 나뉘는데 「화악산 운주암」이라는 표지를 보고 정면으로 올라서야 한다. 임도를 계속 따라가도 좋지만 시간이 너무 걸린다. 사거리에서 150m 가량 올라서면 길 왼쪽으로 넓은 산길입구가 보이는데 들어서자마자 취재팀의 리본을 확인해 널따란 숲속 길을 버리고 오른쪽 샛길을 통해 우거진 수풀 사이로 접어들어야 한다. 험한 산사면을 30분간 힘겹게 올라서면 다시 임도 위로 나온다. 임도를 따라 왼쪽으로 10분 나아가자 「화악산 운주암」이라는 표지판과 함께 가파른 산길 소로의 입구가 나타난다. 미련없이 임도를 버리고 가파른 오솔길을 20분 올라서면 운주암이 모습을 드러낸다.
운주암 마당을 통과해 절 뒷길로 접어들자 주능선으로 올라가는 길이 또렷하다. 산 중턱에서 주능선으로 곧장 솟아오르는 길이라 고된 된비알이다. 20분 남짓 올라갔을까. 짙은 수풀과 구름에 덮인 바위능선이 취재팀을 반겨준다. 원래 화악산은 경치가 좋기로 소문난 산이다. 하지만 구름이 자주 몰려와 시야가 막히는 날이 종종 있다. 취재팀이 답사산행을 갔던 때도 그런 날이었다.
주능선을 정상으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 왼쪽으로 꺾어 길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짙은 잡목구간과 바위지대를 번갈아 통과해 40분을 더 지치고 나가자 드디어 화악산 정상. 꼭대기에는 청도산악회가 설치한 대형표지석이 서있다. 중간에 895m봉에서 한번 쉬어야만 했다.
하산길을 잡으려면 10분 정도 더 능선을 타고 가야한다. 돌탑과 표지판이 서있는 능선 위 갈림길에서 「평양리」쪽으로 내려서야 한다. 내려서자마자 마주치는 첫 갈림길에서 밤티재로 빠지는 왼쪽 길을 무시하고 무작정 직진한다.
가파르고 좁은 산길을 따라 1시간 30분 가량 길게 내려와야 마을로 내려설 수있다.
# 교통편
우선 열차로 밀양까지 간다. 산행시간이 제법 긴 만큼 되도록 일찍 출발해야 한다. 늦어도 오전 7시대의 열차는 타야 산행에 차질이 생기지 않는다. 오전 6시15분, 45분, 55분, 7시15분 30분 등. 금요일 오후 6시이후및 토 일요일 4천7백원. 화수목 4천원. 월요일및 금요일 오후 6시 이전 4천5백원.
밀양역전 시내버스로 밀양시외버스터미널로 가서 「구기」행 새마을버스를 타야한다. 오전 6시40분 7시50분 8시20분 9시20분 10시10분등 하루 9회 운행. 10시10분 버스는 너무 늦은 시간이다. 최소 그 이전의 차를 타야 한다. 810원. 고법 미리벌연수원앞 하차.
청도 평양마을로 하산하면 마을구판장 앞에서 오후 7시와 9시5분(막차)에 청도로 가는 버스가 있다. 청도에서 부산까지는 열차를 이용하면 된다.
평양마을의 버스정류소 가까이 「굽은 소나무와 오리도둑」이라는 오리요리 전문점이 있다. 농장에서 직접 기른 오리를 재료로 오리로스구이 한방오리통구이 오리양념구이 등을 독특한 조리법으로 상에 올린다. 1마리당 2만5천∼3만5천원으로 1마리면 3∼4명이 충분히 먹을 수 있다. 파전과 칼국수도 만들어 판다. (054)371-52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