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듯 천성산은 원효대사에서 지율스님에 이르기까지 불국토를 꿈꾸는 스님들의 의지로 불심이 곳곳에 배어 있다. 설화에 따르면 원효는 천성산에 89개의 암자를 세웠지만 지금은 내원사를 비롯 홍룡사 노전암 조계암 등 20개 가까운 암자들만이 산문을 열어놓고 있다. 절집이 풍수지리에 따라 그 터를 정하기에 산세와 풍광이 뛰어남은 당연지사.
그간 천성산 중앙능선을 타는 코스와 석계에서 천성산 정상을 지나 양산 무지개산장으로 하산하는 코스를 소개한 국제신문 근교산팀은 천성산 산행길중 가장 험난하다는 공룡능선 코스를 택했다.
천성산의 경우 과거에는 화엄벌 인근의 922.2m봉을 원효산, 811.5m봉을 천성산이라 불렀지만 최근 전문가들의 고증에 의해 922.2m봉을 천성산, 811.5m봉을 천성산 제2봉으로 정정했다. 하지만 이정표와 산 정상의 입석은 예전 명칭을 그대로 사용해 혼동하는 아마추어 산악인들이 간혹 보였다.
![]() | |
산행은 내원사 매표소~공룡능선~짚북재~737.9m봉~천성산제2봉~807.2m봉~은수고개~산죽길~내원사 매점 주차장~내원사 매표소로 돌아오는 원점회귀 산행. 대략 5시간30분 정도 걸린다.
공룡능선은 말 그대로 거대한 공룡의 등줄기를 오르내리듯 대여섯개의 봉우리가 쉴새없이 기다리고 있다. 산행 도중 서너번 로프를 잡고 올라야 하는 등 만만찮은 고행길이다.
내원사 입구 주차장 내 옛 매표소인 태광연쇄점과 내원사로 향하는 천성교 사이에 난 길을 들머리로 잡는다. 계곡따라 난 길이다. 벌써부터 부처님탄생일이 다가옴을 알리는 연등이 일정 간격을 두고 나무 위에 걸려 있다.
간이 화장실을 지나면 ‘성불암 가는 길’이라고 적힌 노란색 팻말이 나무에 걸려 있다. 노전암 방향에서 내려오는 물길과 만나는 합수점에서 성불암 계곡방향으로 들어선다. 왼쪽능선이 공룡능선의 들머리다. 연분홍 진달래가 주변에서 반긴다.
진달래는 이번 산행 내내 산길 주변에서 지친 몸에 활력을 불어넣어 봄산행의 즐거움을 만끽하게 하는 촉매역할을 한다.
30m 정도 올라선 후 성불암 계곡길을 버리고 산죽이 군락을 이룬 왼쪽 길을 택한다. 오른쪽 길은 성불암 짚북재로 가는 길이다. 이제부터 본격 경사가 심한 오르막이다. 땀을 흠뻑 적시면서 30분 정도 오르면 능선에 닿는다. 왼쪽으로 거대한 암벽이 가로 막고 있다. 로프를 잡고 오른다. 앞선 사람은 로프를 타고 오르면서 군대에서 유격훈련하는 기분이라며 한마디 한다. 첫 전망대다. 진달래 사이로 저 멀리 노전암이 보인다.
안부에서 약간의 편평한 길을 지나면 다시 오르막. 숨을 돌리고 정면을 보면 또 다른 봉우리가 떡 버티고 서있다. 작은 봉우리 하나 오르는데 15~20분. 이같은 유사한 상황이 너댓번 반복되면 거의 질릴 정도. 산행 도중 나타나는 전망대에 오르다 지쳐 땀을 식히는 사람들이 이를 방증해주고 있다. 기복이 심한 능선을 가진 이 공룡은 몸이 거대해 천천히 걸어다닌 마음씨 순한 초식공룡이 아니라 날렵하고 포악한 육식공룡이리라.
이렇게 2시간30분 정도 오르락내리락하면 넓은 안부인 짚북재에 닿는다. 짚북재는 원효가 짚으로 북을 만들어 1천명의 승려를 소집한 곳. 나무로 만든 이정표가 서 있다. 왼쪽으로 노전암, 오른쪽으로 성불암, 직진하면 우리의 목적지인 천성산제2봉까지 1.2㎞라고 적혀있다. 보통 여기서 점심을 먹는다. 짚북재를 지나면서 보라색의 얼레지가 곳곳에 보여 이곳이 얼레지 군락지인 듯하다.
![]() | |
산행 도중 만난 전망대에서 바라 본 내원사 입구와 용연마을. | |
정상을 향해 직진한다. 오르막길에는 로프가 있어 산행을 돕는다. 기복은 덜하지만 역시 오르락내리락.
50분 정도 정신없이 걸으면 정상을 코 앞에 둔 암봉. 저 멀리 정족산과 고산습지인 무제치늪이 보인다.
정상까지는 15분 정도. 정상에 앞서 왼쪽에 난 갈림길은 낙동정맥으로 가는 길이며 오른쪽은 내원사로 바로 하산하는 길.
하산은 직진해서 내려선다. 임도가 보이지만 계속 산길로 간다. 5분 후 갈림선에서 오른쪽 길을 택한다. 산허리를 돌아간다. 10분 뒤엔 은수고개. 왼쪽으로 가면 덕계 무지개폭포 방향. 억새 사이로 10분쯤 오르막길, 갈림길이 나타나면 오른쪽길을 택한다. 계속 직진하면 천성산(옛 원효산) 정상 가는 길이다. 하산길 초입에는 갈림길이 잇따라 나오므로 유의하자.
곧바로 두갈래 길이 나오면 오른쪽길을, 10여분 후 갈림길에선 왼쪽길을 택한다. 오른쪽엔 푹 꺼진 습지가 보인다. 여기서 좌측 능선으로 오른다. 사람이 다니지 않아 낙엽이 쌓여있다. 여기서부터 능선따라 내원사까지 내려간다. 곳곳에 한동안 안보이던 진달래가 다시 나타나고 산죽이 길을 막고 서 있다. 특히 유의하자.
약 40, 50분 산죽을 헤쳐 나오면 내원사가 보이지만 길이 없어 오른쪽 계곡으로 내려선다. 계곡을 건너면 정상에서 내려오는 길과 만난다. 이후 내원사, 매점 주차장을 지나 30여분 정도 걸으면 매표소 주차장이 나온다.
/ 글·사진=이흥곤기자
/ 산행문의=다시 찾는 근교산 취재팀 (051)500-5150, 245-7005
<산행前에 만난 지율스님>
지율스님과 조우한 것은 지난 6일 오전 내원사 입구 주차장. 회색 승복에 흰 운동화, 밀짚모자를 쓴 그는 산행을 위한 차림새였다. 그는 얼마전까지 경부고속철 천성산 금정산 통과 반대를 위해 목숨을 건 38일간의 단식을 감행했다. 누구나 도전할 수 없는 결단이었다.
현재 정부에 의해 고속철 노선 재검토위원회가 설치된 밑바탕에는 단기필마로 뛰었던 그의 투혼이 깔려있다는 것을 의심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는 이날 자연의 아름다움과 생명의 소중함을 공부하는 시민모임인 초록의 공명 회원 및 시민 90여명과 함께 ‘얼레지꽃길 지나 암자 만나기’ 행사를 위해 천성산 노전암~조계암 계곡인 간천골을 오른다고 말했다. 시민들에게 천성산의 소중함을 직접 알리기 위해서다. 정치적 성향이 강한 시민단체와의 협력보다는 환경문제는 친환경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진리를 뒤늦게나마 깨달은 후 첫 나들이다. 첫 행사인 만큼 언론의 도움이 필요하다며 활짝 웃었다.
스님은 “매월 첫째 일요일마다 특별한 주제를 갖고 천성산에 오른다”며 “보다 많은 사람이 동참해 천성산에 고속철이 통과하지 못하도록 힘을 모으자”고 강조했다. / 이흥곤기자
<교통편>
롯데백화점 동래점(종점)이나 온천장 지하철역 앞에서 언양시외버스터미널(종점)까지 신평행 12번 완행버스를 타고 내원사 입구 용연버스정류장에서 내린다. 오전 5시부터 10분 간격으로 밤 10시까지 있으므로 차편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 1천원.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통도사IC에서 빠져나와 곧바로 좌회전, 양산방향으로 향하다 보면 내원사 이정표가 나온다. 내원사 매표소의 하루 주차비와 입장료(1인당)는 각각 2천원이다.
<떠나기 전에>
부산근교에는 공룡능선이 여러 개 있다. 신불산 공룡능선, 간월산 공룡능선 등 울퉁불퉁한 공룡의 등을 타고 오르는 재미가 좋다. 그중에서도 유독 천성산 공룡능선을 좋아하는 꾼들이 특히 많다. 로프를 타고 바위를 오르면 가슴까지 시원한 전망이 전개되기 때문이다.
근교산 동호인중 공룡능선의 취재를 원하는 분이 많아 진달래가 피고 철쭉이 반기는 천성산을 찾아 보았다. 원효와 내원사가 아니라도 천성산은 매력있는 산이다. 화엄벌과 정족산의 철쭉군락, 사방으로 뻗은 능선에 암반이 박혀 있고 용연천과 계곡의 아름다움이 금강산과 닮았다 하여 제2금강산으로도 불린다. 하산은 천성산(옛 원효산) 정상에서 내원사로 뻗은 능선을 답사하였다. 아무도 찾지 않은 산길, 발밑에 두껍게 깔린 낙엽, 부채살처럼 펼쳐진 화엄벌의 계곡이 원시의 골짜기를 연출한다 산길은 능선에서 우측으로 돌아내려선다. 내원사 뒤 계곡으로 내려서는 길이 있지만 취재팀은 우측 산죽사이로 내려서서 산길을 잡았다. 내원사 뒤 골짜기로의 출입을 삼가기 위해서이다.